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야고보 사도 축일(07/25/2020)2020-07-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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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야고보 사도 축일(07/25/2020)

 

<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 일컬어지는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사도의 축일을 맞아 축일 맞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야고보 사도께 우리를 위한 전구를 드립니다. 영어로 제임스라 불리는 분들이 모두 다 야고보 사도를 주보로 모신 분들이지요.

 

어제는 감사하고 고마운 비가 내렸습니다.

소소한 행복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대지가 메말라 있었는데 참 감사하네요.

비 한 줄기에도 감사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며 떠오르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담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장담(壯談)하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말하다.

 

그러고보면 참 많이 우리는 장담합니다.

혹 아니신가요?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믿음에 근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믿음의 근거는 언제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보자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돌다리도 두드려보아야 합니다.

특히 내가 가진 신념의 체계나 사상의 체계는 언제나 불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면 강요가 되어 버리죠.

사도들이 오늘 예수님께 대답하는 , 할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지금의 우리가 볼 때 여전히 유효합니까?

 

저는 가끔 소소한 것에는 목숨을 걸고, 큰 일에는 한없이 대범하기까지 합니다.

소소한 것을 얼마든 양보할 수 있는데도 왠지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고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 대한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가 목숨 걸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말 확실한 건가요?

 

아닐 수 있음에 대한 양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은 양보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은 확신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조금 더 여유롭고 감사하는 하루를 살아가시길!

그리고 정말 필요로 할 때 모든 것을 거는 장담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양보할 수 있을 때까지 양보하는 평화로운 오늘을 살아가시길!

 

여러분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더욱 깊어지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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