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01/02/2021)2021-01-0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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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01/02/2021)

 

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처음 교회(즉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의 모임)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아직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던 때가 서서히 지나면서 박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의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견해차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말씀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떠올렸던 예수님의 말씀,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가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 유명한 사도 바오로조차도 예수주의자들(교회)을 가장 큰 종교적 이단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하느님 신앙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도무지 그 어떤 이유로도 예수를 하느님이라고, 주님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이는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고 구약의 빛에 비추어도 하느님은 예언자등 선지자들을 파견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고 함께 하시는 분이지 직접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는 상상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는 마지막 예언자 요한의 외침대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 말씀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 요한의 이야기에 자신을 열고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 증언이 불러올 파장이라든가 손익을 따졌고 자신들을 새롭게 하는 것에 실패함으로

예수님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에도 이러한 비슷한 일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오래된 것이 좋습니다.

안정적이고 우리 삶을 흔들지도 않고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지식으로 평안함을 깨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로워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굳건히 자신에게 전해진 진리를 지키되 새로움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좀 더 고민해볼 필요는 언제든 있습니다.

 

새로움으로 시작한 한 해가 오늘도 또 오늘도 새로워지기(日新又日新)를 기도드립니다.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않음을 두려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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