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 오늘의 말씀과 묵상. 사순 제5주간 토요일(03/27/2021)2021-03-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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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사순 제5주간 토요일(03/27/2021)

 

<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21-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의 모의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해 그들은 모였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억울한 삶을 살던 그들은 더 큰 곤란함을 피하고자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고 그의 삶을 배격합니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전체가 죽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그는 죽음에 넘겨져야 한다.”입니다.

누군가를 죽음에 넘기는 결론을 작당하여 모의합니다.

그리고 곧 실행에 옮깁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에 동의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지위가 보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민족을 위한다는 거창한 대의를 위해,

그렇게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어느 날 그것이 자신의 처지가 될 수도 있을 터인데 도무지 어찌할 것인지요?

 

몇몇이 모여 그렇게 한 사람의 죽음을 결정합니다.

몇몇이 모여 좋은 결정을 해도 모자랄 터인데.

 

우리 삶 속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몇몇이 모여 한 사람을 죽을 사람 만듭니다.

실제로 힘이 있었다면 얼마나 험악하게 될지 끝을 알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말로서 사람을 수만 번은 죽일 수 있음을 왜 모를까요?

 

예수를 죽게 한 사람들은 결국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를 답안으로 택하였지만,

그날의 그 결정이 어느 날 문득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압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누군가를 밀어내고 누군가를 버리며

그렇게 자기 뜻에 맞는 사람들과만 자신들의 성을 만들어나갔으니까요.

 

아무리 세련된 말을 하고 적당한 웃음을 입에 물더라도 마음에 생기가 없고 다른 이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렇게 스스로 구원을 걷어차 버립니다.

배척하는 것이지요.

 

지혜로움이란 말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인가 싶고

동조하지 않는 것인가 싶습니다.

들어서 좋지 않은 말을 그리 쉽게 하는 이들과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나 싶습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리고 악은 섣불리 맞설 수 없으니 피하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요?

사람이 생겨 난 모습 다르듯 그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겠지만,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

쌓아 올린 성들도 세월에 스러지듯

악은 그렇게 스러질 것입니다.

 

부디 우리는 지혜로움으로 덕을 쌓고 하느님으로 인하여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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