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부활 제3주간 금요일(04/23/2021)2021-04-2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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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신앙과 생활을 분리했다 | 11HN 성서연구원 


오늘의 말씀과 묵상. 부활 제3주간 금요일(04/23/2021)

 

<1독서>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0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2-59

 

그때에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변화와 부르심.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쉬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서로 말다툼을 벌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신념대로 유대인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새로운 종교 무리를 박해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문제 삼았고 그래서 오히려 치열한 반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싸움이 싫습니다.

그래서 다투지도 않고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짐짓 점잖은 체 뒤로 물러 나와 자신과 뜻이 맞는 몇 사람과 함께 이야기할 뿐입니다.

 

변화가 적은 삶을 사는 것이지요.

사실 잘 몰라서 싸울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이유가 소위 진리라는 것, 자신을 전부 걸고 하는 싸움이 아닌 시시한 것일 수 있기에 우리의 싸움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어쨌든 끝까지 가야 하는 싸움을 우리는 거절합니다.

 

종교적 회심이든 실질적 변화든

그것은 전부를 걸고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실패의 확률?

, 그 싸움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삶이 두려워 우리는 어떤 변화도 우리 삶을 흔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우리의 약점입니다.

 

성령께서 휘몰아치면 말 그대로 미치게 됩니다.

삶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지고 거침없이 내달리게 됩니다.

전부를 걸게 됩니다.

 

교회가 세련되면서부터 교회의 내적 생명이 약화하였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습니다.

미친 사람이, 거침없이 달리는 사람이

세련될 수가 있을까요?

 

변화를 두려워하기에 부르심은 적고 성령의 움직임도 적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세련된 종교 생활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 것은 아닌지요?

적당하게~~~

물론 우리 자신에게 모욕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위의 질문만은 잊지 않기를

마음에 새기고 새깁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아멘.”

 

불타오르는 삶이 우리에게 닥치기를

그리하여 우리 삶도 새로워지고 온 누리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절함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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