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9주간 수요일(06/02/2021)2021-06-0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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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노트 on Twitter: "<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축일 맞으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  "


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9주간 수요일(06/02/2021)

 

<1독서>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3,1-11.16-17

 

그 무렵 나 토빗은 1 마음이 몹시 괴로워 탄식하며 울었다. 그리고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2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당신께서 하신 일은 모두 의롭고 당신의 길은 다 자비와 진리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3 이제 주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살펴보아 주소서. 저의 죄로, 저와 제 조상들이 알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으로 저를 벌하지 마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짓고 4 당신의 계명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저희를 약탈과 유배와 죽음에 넘기시고 당신께서 저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와 조롱거리와 우셋거리로 넘기셨습니다.

5 저의 죄에 따라 저를 다루실 적에 내리신 당신의 그 많은 판결들은 다 참되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고 당신 앞에서 참되게 걷지 않았습니다.

6 이제 당신께서 좋으실 대로 저를 다루시고 명령을 내리시어 제 목숨을 앗아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흙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당치 않은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하고 슬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 명령을 내리시어 제가 이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벗어나 영원한 곳으로 들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 살아서 많은 곤궁을 겪고 모욕의 말을 듣는 것보다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7 바로 그날,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도 자기 아버지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8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신부와 관련된 관습에 따라 신랑이 사라와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가 그 남편들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 여종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이미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의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

9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는 왜 때려요? 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을 영영 보지 않게 되죠.”

10 그날 사라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여 울면서, 자기 아버지 집의 위층 방으로 올라가 목을 매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고서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밖에 없었는데 그 애가 불행을 못 이겨 목을 매고 말았구려.’ 하면서, 내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만일 그렇게 되면 늙으신 아버지께서 나 때문에 슬퍼하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시게 되겠지. 목을 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11 그러면서 사라는 창 쪽으로 양팔을 벌리고 기도하였다.

16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17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찬미예수님. 형제 자매 여러분, 좋은 오늘을 시작하셨습니까?

저는 어제 밤에 아주 감사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제가 어제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에 자동차가 문제가 생겨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차를 일단 성당까지 옮겨놓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차도 마침 고속도로에서 빠지는 길에서 문제가 생겨서 처리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찔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시간이었는지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신 사무장님부부나 요한 형제님이나 그들의 수고에도 얼마나 감사한 시간이었는지요?

물론 밤에 잠자리를 한번쯤 설쳤지만 너무나 감사하게 오늘을 엽니다.

살아가다 생기는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그 안에서 감사함을 찾고 또 수많은 이의 도움을 얻게 되면

돌아보면 정말 은총입니다.

 

그렇게 아침을 여는데 복음말씀의 사두가이들을 만나서는 기분이 좀 언짢아졌습니다.

그들이 악역을 자처한 것이 아니라 예로 든 어떤 부인의 삶이 그저 그렇게 논란거리로서만 그들에게 머문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떤 여인이 결혼을 하고 사실 일곱 번이나 결혼을 했는데도 후사도 없었다.

그러면 얼마나 고달픈 인생이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본래 이스라엘이 이런 법을 만든 이유가 아무 후사도 없이 남편이 죽었을 때 과부가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기에 그 여인의 삶을 지켜주고 존중감을 갖게 해 주는 것에서 시작되었던 것인데,

이제 우리의 눈으로 보면야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인간 지성이 발달하기 전에, 인간 문명이 지금처럼 성숙되기 전에는 그렇게라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율법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되었으니.

 

그런 이야기로 가쉽거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 한 여인의 삶으로 들어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인데.

너무 냉혹하고 더구나 그런 논리로 누군가를 매도하려는데 써 먹다니.

 

사람이 참~ 무섭기도 합니다.

 

남의 사연을 겉으로만 보면야 일상사 여러 이야기거리가 되겠지만,

가만히 살피고 그것이 제 삶이 되면

또 얼마나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함부로 누구의 삶도 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함부로 누구도 감히 판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안의 냉혹함이 누군가를 그토록 쉽게 판단해버리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토빗도 사라도 얼마나 억울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 삶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주님께서 치유의 천사 라파엘을 보내셨듯이,

라파엘이 주님께서 고쳐주시다는 뜻입니다만,

그렇게 우리 삶을 참된 위로와 평안으로 고쳐주시고 낫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리는 이 아침입니다.

 

평화가 함께 하시길~

수많은 천사가 문득 당신 삶에 와 있음을 깨달으시고

감사의 기도로 오늘을 살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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