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일(10/03/2021)2021-10-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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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일(10/03/2021)

 

<1독서>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8-24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9-11

 

형제 여러분, 9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6

 

그때에 2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연중 제28주일을 시작하는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다 제 마음에 턱 하고 치받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완고하다는 이 말의 뜻을 잘 아시는지요?

제가 사전을 찾아보니, “융통성이 없이 올곧고 고집이 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말해도 생각이나 사고를 바꾸지 않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신자들이 가끔 , 신부님들은 고집이 셉니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혹시 완고하다는 말씀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무엇인가 걸리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그리 무조건 부정할 수만 없어서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것만 같습니다.

 

제가 사제로 서품받을 때 교구장 주교님은 박정일 미카엘 주교님이신데 현재 96세의 고령임에도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각 주교님들은 주교로서의 모토를 가지고 계시는데 박 미카엘 주교님의 모토는 충성과 온유입니다.

그리고 오늘 문득 완고함의 반대말이 온유함임을 다시금 알아차립니다.

 

온유함이란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부드럽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드러움을 말하지요.

딱딱함과 부드러움.

심지가 올곧음과 유연함.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머리에 맴돕니다.

 

저는 충성스럽기는 어렵지 않은데 언제쯤이나 부드러워질까하며 늘 고민합니다.

이런 고민을 여러분도 하시는지요?

 

하느님은 부드러운 분이실까요? 딱딱한 분이실까요?

하느님은 온유한 분이실까요? 완고한 분이실까요?

우리나 하느님을 이처럼 딱 둘로 나눌 수는 없다면, 하느님은 완고한 편에 가까우실까요? 아니면 온유한 분에 가까우실까요?

아마도 여러분은 하느님은 온유한 분이시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2독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셨다고 말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온유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누구라도 진정으로 형제로 대할 수 있는 분이시라면 과연 온유한 분이실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위대함, 놀라운 온유함이 바로 우리를 감탄하게 하고 우리를 당신 사랑에로 부르십니다.

 

저는 오늘 이 묵상을 나누면서 여러분도 온유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하느님의 온유함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릴 때 친구 사귀기는 쉬워도 나이들어 친구 사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가운데 온유함을 점점 잃어가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쉽게 싸우지만 쉽게 화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가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다가서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한 주간은 특별히 이 온유함에 대하여 함께 묵상하고 실천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온유하신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 한 가운데 머무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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