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4/2021)2021-10-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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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4/2021)

 

<1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주 오래전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한때 소위 유흥업소에 종사했던 분이 성당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 옷차림도 그렇고 어쩐지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다.

신자분들이 불편해하는 기색도 뚜렷했고 얼마 되지 않아 그분도 성당에 더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편해하는 감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수군거리는 뒷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그 자매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다르므로 느끼는 불편함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므로 소위 넌 아니야하는 식은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여전히 다른 생각, 다른 삶의 흔적들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르므로 다양하고 다채롭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종종 형제도 밀쳐내는데 하느님 또한 그렇게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하느님도 내 마음에 들어야 우리 하느님이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와 다르면,

그런 하느님은 필요 없다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내가 하느님 마음에 들어야지 하느님이 내 마음에 들어서야 하겠습니까?

 

유대인들의 자신들만의 하느님을 원하고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원하고 요구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그런 신앙을 혹여 우리도 원하는 것은 아닐지요?

숱한 나날 내가 쌓아온 신앙이 그런 것이라면 마땅히 허물어지고 다시 새워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참되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

한 개인에게나 온 세상에나 필요한 법입니다.

내가 거듭 되살아나야하고 거듭 창조되어야 한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느님,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느님,

우리가 가진 하느님과는 다른 모습의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야 함을 잊지 말고,

 

너른 마음으로, 넉넉한 품으로

형제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의 오늘이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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