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06/12/2022)2022-06-12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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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06/12/2022)

 

<1독서> 잠언 8, 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5, 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 16, 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는 날이 정말 무더웠습니다. 마치 본격적인 여름의 서막을 알리듯 한껏 대지가 달아오릅니다. 무더운 여름 잘 맞이하셔서 슬기롭고 건강하게 이 여름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교회는 하느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도록 온 세상을 초대합니다.

무엇보다 삼위일체 대축일인 오늘의 이유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기를 다한 교회의 다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초대 교회 요한 공동체는 예수님 당신 자신의 입을 빌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두고 오랫동안 성찰해왔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이 세상 오신 하느님, 그리고 성령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신학적인 언어로 정립한 것이 삼위일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를 온전히 인간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신비라고 말합니다.

 

어떤 경우,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그것을 말이라는 그릇에 담아낼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이기에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를 오롯이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고백하고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자체가 바로 그러합니다.

신비인 것입니다.

신앙의 언어로 한껏 담아내고 예수님의 입을 빌려 풀어내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부족한 설명임을 압니다.

 

하느님은 신비이십니다.

마치 다른 영역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언제나 또 다른 차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신비에 다가설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힘쓰는 것입니다.

사랑에 눈뜬 사람은 이 세상이 여럿이 아니라 하나임을 압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결국엔 같음을 압니다.

사람이, 그리고 이 우주의 원리가 사랑임을 압니다.

오롯이 사랑만이 신비를 관통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언제나 다시 말씀드립니다.

더 먼저 사랑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합시다.

그러면 당신은 신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 그렇다고 하여 온전히 신비를 다 깨닫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이 수행한 그 사랑이 한없이 깊어져 하느님을 사랑하더라도 하느님은 언제나 또한 미지의 영역처럼 남아 계실 것입니다.

완전히 알아차리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원리, 그리고 거기에서 다다르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로운 현존을 느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더 먼저, 더 깊이, 더 많이 사랑하는 은총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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