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묵상

Title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09/18/2022)2022-09-1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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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과 묵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09/18/2022)

 

<1독서> 지혜서 3, 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8, 31-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 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도무지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오늘의 나는 도무지 그럴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다른 일은 다 하더라도, 아니 어찌어찌할 수 있을 것만 같더라도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만은 힘들 것만 같습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합니다.

책임감도 그 이유 안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책임감만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의 역사 안에는 이런 일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보다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많이 성당에 다니거나 영성체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보다 더 세련된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많은 하느님에 대해 이해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목숨을 바쳤고 그렇게 이 세상의 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내가 진정 무엇이 다른지, 정말 다른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사랑의 힘이 좀 더 커질수록

그렇게 힘들어하던 용서와 희생이 좀 더 이해되고 실천됩니다.

그래서 이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내가 좀 더 사랑하게 되면, 좀 더 사랑받게 되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전히 용기는 부족하고 믿음이 그 용기를 떠받쳐주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아니 이렇게 넘어졌다가 수없이 일어나다 보면

나도 불쑥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끝까지 부족한 내 믿음에 인내하며 나아갑니다.

한 번의 놀라운 용기를 위해 그토록 수없이 많은 날을 고민하고 번민하고 회의하고 지새우며

오늘의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직 사랑이라는 그 이유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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