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과 묵상.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09/23/2022) <제1독서> ▥ 코헬렛 3, 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 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몸에 지니고 살아온 ‘오상의 비오’신부님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보이셨던 놀라운 일보다 그분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잔에 눈길이 더 갑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너희도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잔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잔인지 이렇게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셔야 할 잔이라면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분의 길을 걷는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지 제 십자가에 더하여 남의 십자가마저 짊어져야 하는 그 고통의 삶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껴안을 때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그 고통을 영광을 잠깐이지만 고통은 평생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결코 짊어질 수 없는 길입니다. 누구나 눈물을 힘들고 슬픔은 멀리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싫다고 내팽개친 십자가마저 주워들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점점 십자가는 싫어하고 십자가의 영광만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팽개쳐진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요? 인류 전체가 짊어져야 할 몫인데, 버려두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주워 집어 들고 나선 분이 바로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시고 데레사 성녀이십니다. 제 십자가 하나 허덕이며 어떻게 하면 잘 잘라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그분들의 모습은 차라리 영웅적이기까지 합니다. 교회가 성인의 공덕을 기림은 그분들을 영예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본받기 위함입니다. 그분들을 향하여 손뼉을 치고 화관을 올리고 송가를 부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들처럼 남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자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누리던 행복보다 성인들이 누리던 고통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여러 가지 중 오늘은 한 가지를 나눠 드립니다. 12.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면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고통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13.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물론 고통을 감내하는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비결이 있습니다. 14. 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께 고통받을 수 있기를 간청했고, 그 고통에서 생겨나는 열매 때문에, 또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이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 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15. 마음에 간직한 채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공로가 되고, 고상하며, 좋은 것입니다. 16. 세상의 예찬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신부님의 고통을 본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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