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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2021-09-1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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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사제는 1887년에 이탈리아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나,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한 뒤 191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며,

191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간직하며 살았다고 한다.


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616,오상의 비오신부님(1887-1968) 인품에 시성하셨다.

  

피에트렐치나(Pietrelcina) 출신의 비오 신부님은

1968923일에 81세로, 이탈리아 동부에 위치한

산조반니 로톤도(S. Giovanni Rotondo)의 수도원에서 돌아가셨다.

 

비오 신부님은 카푸친회 수도사제로서 반세기 동안

어떠한 의학적 치료나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한 오상(五傷)을 지니고 사셨다.

손바닥에 난 작은 동전 크기의 구멍에서,

그리고 발과 가슴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수많은 기적적인 병치유가 이 수도사제의 간구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예언, 신비한 향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 공중 부상 등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증언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눈동자가 없어 볼 수 없었던 소녀 젬마양이 보게 된 것이라든지,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실명한 오른쪽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조반니 사비노의 기적적 치유는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세계 각처에서 수십만의 순례자들이, 어려운 여행에도 아랑곳없이 비오 신부님을 뵙고자 산조반니 로톤도를

찾아온것은, 단지 기적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수많은 순례자들은 근본적으로 영성적 동기 때문에 비오 신부님 주변에 모여들었다.

대부분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와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삶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이 단순히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현재에 살아계심을 놀랍게 증거하였다.

 

  

그러하기에 역대 교황님들도 큰 사랑으로 비오 신부님을 대하셨는데,


1921년 교황 베네딕토 15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신부님은 돌아가시기 전부터 성인이셨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우리 주님의 오상을 뚜렷이 잘 나타내신 분"이라고 했는데,

그분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같은 증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 비오 신부님은 하루의 대부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다.

 

선종하기 직전인 1967년에는 

만오천 명의 여자와 만 명의 남자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사실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며칠씩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참다운 회개와 통회가 

선행되어야 했기에 적어도 편안하고 친절한 만남은 아니었다.

  

비오 신부님은 신중하지 않은 이에게는 엄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대개는 몇 달 또는 며칠 뒤에 되돌아와

진정으로 뉘우치며 고해성사를 보았고,

그로 인하여 삶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이러한 영성 지도에서 그분의 모든 위대함이 드러나는데,

그는 독특한 지도 방법과 영혼들의 고뇌에 그 자신이

함께함으로써 삶을 변화시켰다.

 

다음의 말씀이 그 일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매일 새벽 430분에 시작하여 1시간 반 정도

집전하는 미사는,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려는 그의 영성의 절정이었다.

 

1시부터 사람들은 성당 문이 열릴 때까지 서서 기도하며 기다린다

멀리서 온 그들은 하룻밤을 설치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비오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제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때문에 성당 문이 열리면 성당은 이내 신자들로 꽉 차고,

신부님의 열정 어린 미사는 때론 두 세 시간씩 계속되곤 하였다.

  

비오 신부님의 눈에는 자주 눈물이 고여있었고,

"왜요?"라는 물음에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는 미사 드리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미사 때마다 양손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제대포에 떨어지곤 하였는데,

온몸으로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는 미사에 대한

그분의 열정은 다음의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세상은 태양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사 성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대 건너편에는 자주, 멀리서 온 순례자들이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 제가 하느님을 이렇게 늦게서야 알게 되다니." 하며 회개하곤 했다.

 

비오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긴 소송은 1969년에 시작되어

199952일 시복식을 거쳐 2002616일로 막을 내렸으나

그분의 사도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에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께 고통을 받을 수 있기를 간청했고,

그 고통에서 생겨나는 열매 때문에,

또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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