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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고해 사제가 네 목소리를 알아듣는 게 두려우냐 - 가톨릭 평화신문 3월 14일자 13면2021-03-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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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교회법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 시기를 전후하여 고해성사를 보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개별법에 의해 우리나라 신자들은 부활과 성탄을 중심으로 1년에 두 번 고해성사를 봅니다. 한국 교회의 특별한 용어인 판공(判功)성사가 바로 그것인데, 판공은 ‘공로를 헤아려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박해가 심했던 조선 시대에, 사제들이 외딴곳에 흩어져있는 교우촌을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찾아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돌보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행하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초기 조선 교회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의 편지에 따르면, 처음으로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를 볼 때 ‘박해의 시기이니 작은 죄는 이미 그대들의 공로로 사해졌으니 큰 죄만을 고백하라’고 권면하여도 ‘조선의 착한 신자들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일일이 헤아려 고백하고 눈물로 통회하였다’고 합니다. 사제의 방문만을 기다리며 숨어 살아가던 그들에게는 생애 마지막 고해성사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식 사제가 집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미사일지 모른다는 간절함 덕분에, 가난하기 그지없는 산골 교우촌에서 봉헌된, 초라한 ‘그 미사의 거룩함은 가히 천사들의 그것과도 같았다’고 편지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신앙에 있어 필수적 단계인 고해성사가 현대에 와서는 점차 의무적인 계명 준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는 순례에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예로부터 순례는 회개와 뗄 수 없는 신심행위인데,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걸음을 따르며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통회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가려면 수년의 세월을 담보로 목숨을 걸어야 했었던 중세 시대에는 성지순례를 크나큰 죄의 보속으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현대의 우리가 쉽고 안전하게 떠나는 순례길이 의미 있어지려면, 적어도 순례 중에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성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비용 때문에 지도신부 없이 순례를 떠날 수 있겠느냐고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정중히 거절하며 신부님과 동행하도록 말씀드립니다. 또한, 저는 순례를 마치기 전에 모두가 고해성사를, 특히 총고해(일정한 기간이나 일생 범한 죄에 대하여 다시 한꺼번에 모두 고백함으로써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것)를 하도록 권합니다. 순례의 길 위에는 고해실이 없습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이 고해의 시간이지요. 사실 어떻게 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나약한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신앙을 다짐하는 순례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해성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로마 순례를 떠난 어느 날, 라테라노 대성전에 도착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이라고 불리며, 성당 봉헌일을 축일로 지내는 유일한 성당입니다. 한때 교황청으로 쓰였고, 지금은 로마의 교구청이며 유명한 신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성당에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하신 형제님 한 분이 급하게 고해실에 들어가 한참 머무르셨습니다. 그런데 고해실 윗부분의 팻말을 보니 ‘이탈리아, 스페인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고해실 안에 계신 신부님이 구사하는 언어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외국어를 잘하시는 줄 몰랐다고 말씀드리니, 형제님은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냥 한국어로 했어. 못 알아듣잖아? 한국 신부님께는 부끄러워서 못했거든.”

형제님을 포함해 순례단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저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가장 내밀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면괴스러워 일부러 모르는 신부님에게 고해를 보았던 일이 있었지요. 그때 저에게 신앙의 길을 이끌어 주셨던 신부님의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너를 가장 잘 아는 신부님을 찾아서 지속적으로 그분께 고해성사를 보도록 해. 그래야 고해와 보속에 은총이 내리고 네 영성에도 도움이 되는 거야. 뒤에서는 부끄러운 일을 그리 잘하면서, 고작 신부가 네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을 두려워해서야 되겠니?”

죄를 짓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는 이 시기에, 하느님의 사랑인 고해성사를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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